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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소박‧화려한 ‘백제흔적’과 마주하다

전국 기자단, 공주‧부여‧익산 ‘유네스코 문화유산’ 탐방

변완영 | 기사입력 2023/12/16 [13:28]

[탐방] 소박‧화려한 ‘백제흔적’과 마주하다

전국 기자단, 공주‧부여‧익산 ‘유네스코 문화유산’ 탐방

변완영 | 입력 : 2023/12/16 [13:28]

전북관광協, ‘백제역사유적지구’ 관광객 유치 총력

 

▲ 지난 7~8일 전라북도 관광협회가 주관한 ‘백제역사유적지구’ 팸투어에 참여한 전국기자단이 익산 백제 왕궁박물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국토교통뉴스

 

[국토교통뉴스=변완영 기자]  백제의 대표도시로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 전북 익산시를 꼽는다. 이곳에는 화려하고 드넓은 왕궁터와 유물이 남아있다. 검소하면서도 소박한 백성들의 터전, 각종 석탑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백제의 우수한 문화는 한성시대 초부터 웅진·사비 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일본에 전파됐다. 불교·천문·지리·음악·공예 등이 일본에 전해져 고대 일본 문화에 씨를 뿌렸다. 지금도 일본 관광객이 많은 이유다.

 

유네스코(UNESCO)는 이러한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기려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했다. 이에 전라북도관광협회는 백제 유적지를 묶어 관광객 유치에 힘을 모으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전북도관광협회와 백제세계유산센터가 주관한 전국 기자단 초청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팸투어’가 지난 7~8일 1박2일간 진행됐다. 

 

▲ 공산성 성벽  © 국토교통뉴스

 

◆ 웅진시대, 정치‧행정‧군사의 요충지… 공주 ‘공산성’

첫 번째 투어지인 공주시 공산성은 20만㎡ 규모의 거대한 산성으로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 동성왕 때 축조됐다.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흙과 돌을 쌓아 만든 천연의 요새로 성벽의 전체 길이는 2660m(토성 735m, 석성 1925m) 에 달한다.

 

기원후 630년 백제 무왕이 부여의 궁궐을 수리할 때 5개월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660년 백제멸망기 마지막 왕이자 무왕의 아들 의자왕이 잠시 머물렀으며 조선후기 이괄의 난(1624년) 때에는 인조가 피난을 왔던 곳이다.

 

또한 공산성은 538년 성왕이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전성기를 누렸다. 왕궁터와 4곳의 문지(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영동루), 쌍수정, 쌍수정사적비, 명국삼장비, 영은사, 연지 및 만하루 등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 있다. 또 산성 정상부근에 위치했던 왕국터에서는 아직도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다.

 

공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곽길은 산책길로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또한 해발 110m의 공산에 위치한 성곽안에 왕이 거주하던 왕궁이 있었다는 점도 독특하다.

 

▲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공산성내 저수지, 왕궁터, 쌍수정, 백제연못  © 국토교통뉴스

 

황포돛배 타고 부여 ‘낙화암’과 ‘고란약수’

발길을 돌려 다음 행선지인 부여 부소산 북쪽 백마강변에 있는 ‘낙화암’으로 향했다. 부여읍 구드래나루터에서 고란사 나루터까지 운행하는 ‘황포돛배’를 타고 약 10분간 달리니 강 옆을 둘러싼 절벽이 나타났다. 

 

낙화암(落花岩)은 백제 멸망기 660년 나당연합군이 사비성(부여성)을 점령하자 의자왕의 후궁 3천명이 스스로 떨어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훗날 후궁이 궁녀로 바뀌었고 떨어지는 모습을 꽃에 비유해 낙화암이라 불렀다. 실제로 3천명이라는 기록은 없지만 당시에 많은 숫자를 나타낼 때 사용된 숫자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선장은 “산 중턱에 붉은 글씨로 ‘낙화암’ 이라고 비석은 조선시대 송시열이 조각한 글씨체”라고 설명했다.

 

궁녀들의 넋을 위로하기위해 낙화암 내가려가진 전 정상에는 백화정이란 정자가 있고, 강변쪽에는 고란사가 있다. 특히 고란사 대웅전 뒤편에는 바위틈에서 나오는 고란약수가 유명하다. 한번 마실 때마다 3년이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꼭 들르는 필수 코스다.

 

▲ 백마강과 황포돛배  © 국토교통뉴스

▲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부여 부소산 남화암, 고란사, 부여읍 구드래나룻터, 황포돛배에서 바라본 고란사  © 국토교통뉴스

 

◆ 30년간 발굴한 익산 ‘왕궁리유적’… ‘관개기술’ 우수

이튿날 백제 무왕의 활동무대였다는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를 찾았다. 무왕(백제 마지막 의자왕의 아버지)이 수도를 옮겼는지, 별도의 왕궁을 건축했는지 알려지진 않으나 왕이 거쳐했던 곳이라는 점은 발굴 유물을 통해 확인됐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시대 궁궐로 사용되다 백제말‧통일신라시대 사찰로 용도가 바뀌었으나 정확한 이유는 알수 없다. 현재는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만 남았다. 

 

궁성은 장방형 담장으로 둘러싸였는데 담장 길이는 동서 약 240m, 남북 약 490m이다. 1989년부터 30년간 진행된 발굴조사를 통해 왕궁의 절반은 정무와 각종 의례를 위한 공간이었고 절반은 정원과 후원으로 활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과학적으로 설계된 대형 (수세식)화장실이 눈길을 끌었다. 이와 함께 합금‧도금 기술이 당시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공방 등은 발전한 건축기술과 수로‧관개기술을 엿볼 수 있다.

 

▲ 익산 왕궁리에서 기자단 전체 사진  © 국토교통뉴스

▲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세계문화유산 왕궁리유적 표지석, 5층석탑, 정원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 기자단이 공중 화장실을 재현하고 있다.  © 국토교통뉴스

 

◆ 백제인의 희망과 구국의 염원 익산 ‘미륵사지’

왕궁터에서 멀지않은 곳에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한 ‘미륵사지’가 있다. 삼국유사에는 미륵사가 639년 백제 무왕 때 창건돼 백제의 절로는 최대 규모였다는 기록이 있다. 미륵사지 넓은 부지에 당간지주‧금당터‧승방터 등의 흔적이 있는 웅장한 사찰지를 통해 당시 백제가 신라와의 전쟁에서 미륵신앙에 기초해서 승리를 기원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백제의 찬란한 불교문화와 더불어 백제인의 희망을 표현한 것이었다.

 

▲ 호수에서 바라본 미륵사지 석탑과 동탑  © 국토교통뉴스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미륵사에는 3개의 석탑이 존재했는데,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이, 중원에는 목탑이 있었다. 동원의 석탑은 발굴당시 완전히 무너져 석재들만 주변에 흩어졌다. 또한 서원의 석탑도 대부분 훼손된 채 6층까지만 남았다.

 

중원의 목탑, 동원의 석탑은 건립연대는 알 수 없었으나 석탑해제 과정에서 ‘금제사리봉영기’가 출토돼 무왕의 비인 사택왕후가 639년 건립했음이 밝혀졌다. 이를 통해 무왕과 결혼한 선화공주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하지만 당시 왕후와 첩실을 여럿 두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선화공주와 사택왕비 모두 무왕의 정비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 익산 미륵사지 발굴도중 나온 석물들(좌)와 9층 동탑과 당간지주(우측)  © 국토교통뉴스

 

◆ ‘국립익산박물관’과 포레스트 ‘족욕’으로 마무리

국립익산박물관은 1980년부터 1996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2009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작업 과정에서 다량의 사리장엄구가 출토됐다. 2015년 7월 왕궁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계기로 국립박물관 필요성이 대두되자 그해 말 기존 도립전시관을 국립으로 승격시켰다. 박물관 상설전시실은 1개 전시동과 3개의 실(익산백제실, 미륵사지실, 역사문화실)로 구성됐다.

 

▲ 익산 국립박물관 입구  © 국토교통뉴스

 

백제 기행 마지막 코스는 익산시 왕궁면 용남길의 식물원 왕궁 ‘포레스트’다. 다양한 식물들과 대화하고 눈앞에 펼쳐진 금마저수지를 바라보며 따뜻한 족욕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김옥영 전북관광협회 본부장은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유네스코로부터 인정받아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됐다”며 “내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찾아와 백제의 역사와 숨결을 느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약 700년간 이어졌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문화발전이 절정에 이른 백제 후기(475~660년)의 왕궁이 있는 도시와 연관된 유적이다.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은 공주의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의 △왕궁과 후원‧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왕릉군‧왕릉원 △수도 외곽 방어시설인 나성, 익산의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등 총 8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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