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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뮤지컬 작가로 변신한 ‘강원희’ 동화작가

“우리들 인생도 허수아비와 눈사람 같은 존재”

한창권 | 기사입력 2024/07/05 [09:06]

[인터뷰] 뮤지컬 작가로 변신한 ‘강원희’ 동화작가

“우리들 인생도 허수아비와 눈사람 같은 존재”

한창권 | 입력 : 2024/07/05 [09:06]

▲ "지금은 아이들 동심 공간이 없어요. 놀이터에도 공원에도 태권도장에 가도 없어요. 어린 시절에 아기를 품에 안고 책을 읽어주던 친구들은 정말 성장 과정부터가 틀리더라"고 말하는 강 작가는 "아쉽게도 저는 제 아이를 품에 안고 책을 읽어준 기억이 없어요. 왜냐면 제가 동화를 쓴다면서 안팎으로 방송 일도 하고 이랬거든요. 아이에게 따뜻하게 해줬던 기억이 저에게 없었다"고 고백한다. [국토교통뉴스=한창권 기자]


최신작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허수아비’ 올 하반기 뮤지컬 공연으로 부활

AI 세대에게 “뮤지컬을 통해 잃어버린 동심 세계를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

삶의 이정표 없이 떠돈 허수아비와 눈사람 통한 지구의 기후변화 등 제시 

7월 11일 목요일 18시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6층에서 ‘출판기념회 개최’

 

[국토교통뉴스=한창권 기자] 강원희 원로 동화작가가 쓴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허수아비’ 작품이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1960~1970년대 여성 동화작가 전성기 시대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강 작가는 화가 이중섭의 작품에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면서 동화작가의 길을 가게 됐다. 서울 태생인 강 작가는 실향민 가족 출신이다. ‘북청에서 온 사자’는 이산가족을 그린 그의 최애작이기도 하다.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한때 홍익대에 합격했음에도 화가의 길을 포기해야 했던 그는 미국 이민 20여 년 동안 재외작가로서 활동해오고 있는 이 시대 마지막 동화작가다. 올 하반기에 올려질 뮤지컬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허수아비’를 통해 AI 시대 속에 점점 퇴색해져 가는 동심의 세계와 작품 속 ‘허수아비’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과 삶, 꿈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 어린이에 대해 상당히 애착이 많아 보인다.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는데 왜 화가의 길을 가지 않았나.

▲ 아이들 때문에 동화작가가 됐다. 한때는 그림에도 관심이 많았었다. 원래는 외국어대 영문과를 나왔지만, 언어 중심의 과정을 잘 따라가지 못했다. 그때는 홍익대 합격증도 갖고 있었고 홍대를 가고 싶었다. 제가 공립학교 다닐 때, 미술 선생님이 제가 미술반 반장도 하고, 또 김경숙 미술 선생님이 저를 따로 불러서 ‘너는 미대 가야 한다’고 그러셔서 미대 꿈을 갖고 있었는데, 집에서는 ‘영어번역 하면서 미술은 취미로 하라’ 해서 제가 홍대를 포기했어요.

 

- 발간한 ‘이중섭과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 이야기가 베어나온다.

▲ 나중에 홍익대 대학원을 다녔었는데, 거기서 화가 이중섭의 그림을 처음 만나게 됐었어요. 1973년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할 때인데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뭔가 알 수 없는 슬픔이랄까, 밀려오는 어떤 슬픔과 더불어 그분의 생애를 보니 그림과 너무 일치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아기가 자다가 깨면 알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리잖아요. 그랬던 느낌, 막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어린이에게 관심이 깊어졌다고 봐요. 그때가 20세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였으니 굉장히 예민한 나이이기도 했고요.

 

- 동화작가로 가게 된 계기는.

▲ 당시에는 모두 등단을 위해 다양한 신춘문예를 기웃거렸죠. 저도 작품 응모해보고 이럴 때, 봄만 되면 신춘문예 병을 앓다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떨어졌는데, 심사하시는 선생님이 우리에게 문예 잡지가 있는데, 작품을 응모해보라고 해서 했더니 뜻밖에도 당선돼서 작가의 길을 가게 됐다. 그때가 이중섭 선생님에 대한 ‘필’을 받은 후, 등단했을 당시는 제가 결혼을 했어요. 왜냐면 동화를 쓰려면 여성으로서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을 겪어봐야 동화도 쓸 수 있겠다는 마음에서였죠. 그래야 글도 깊어진다. 딸 하나였지만, 이전에는 소설로 떠돌고 이러다가 제가 아기를 낳고부터 동화를 쓰게 됐죠.

 

- 역시 아기에서 아동으로 또 아이들과 인연이 많은 것 같다.

▲ 그렇다. 모든 에너지가 내 아기를 통해서였고, 아기가 나를 가르쳐주듯이 써 온 것 같았는데, 아기가 점점 크니까 점점 힘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어요. 그 아기가 지금 마흔이 넘었고 미국에서 살고 있거든요. 근데 그 딸도 남자 아기를 낳은 거예요. 너무 신기했어요. 나중에는 미국에 있는 동안 손자들을 제가 돌봐줬거든요. 태어나자마자 제 품에 안기며 키우기 시작했었는데, 처음엔 딸을 통해서 나중엔 손주를 통해서 동화가 계속 연결되고, 그래서 제가 이중섭 선생님과도 비교를 많이 해봤어요. 

 

▲ 서울 태생인 강 작가는 진짜 시골을 볼 기회가 없었다고 말한다. 언젠가 부친을 따라 지리산 섬진강 부근 시골에서 허수아비를 처음 봤는데,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허수아비가 너무 커다란 인형처럼 보여 무서웠다고 한다. "또 허수아비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으로 보였다"고 회고한다.  [국토교통뉴스=한창권 기자]

 

- 어떤 비교였는지.

▲ 인상파 화가 ‘고호’는 결혼을 안 했잖아요. 오로지 자신과 싸움이었죠. 이중섭 선생님은 그래도 생명을 잉태하고 아이를 키워보신 분이라서 그림 성격은 좀 틀린 것 같아요. 사람들도 자꾸 그거와 비교하죠. 그러니까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본 사람과 천양지차다. 아이를 낳음으로 어떤 모성애와 생명력, 사랑을 그릴 수 있어요. 아무래도 여성은 아이를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강하잖아요.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키우는 여성은 애를 낳아봐야 인생을 아는 거예요. 저도 그랬답니다.

 

- 재외동포 작가로도 알려졌는데.

▲ 어쨌든 이중섭 선생님이 나의 동화 배경이 됐고, 그사이에 미국에서 20년 동안 이민 생활하다 보니까, 어떤 ‘디아스포라’(이방인)라 할까요. 뭔가 떠도는 듯한. 왜냐면 미국에 뿌리내린 것이 아니고, 또 한국에도 뿌리내린 것도 아닌 떠도는 거죠. 근데 아이들은 그냥 영어로 말할 뿐이지 모든 정서는 사실 한국과 함께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냥 바람만 있을 뿐, 거기에 속해 있지 못해요. 제가 6개월마다 한국에 있다가 또 미국에 가서 6개월 지내다 보면, 6개월이라는 공백 때문에 좀 바보 같아지는 느낌이에요. 어느 곳에서 마음을 두지 못하고 있지만, 고국은 부모님 묘지도 있고, 그런 슬픔을 한국에 오면 부모님 묘소에 가서 한바탕 울고 나면 풀리지요.

 

- 실향민 작가로서 1천만 ‘이산 가족’ 이야기인 ‘북청에서 온 사자’를 썼다.

▲ 전쟁 당시 이산가족이 천만이었으니, 우리는 이중섭 가족처럼 이산의 아픔을 겪은 후예들인 셈이죠. 예술가는 그 시대의 정신적인 보루이므로 훌륭한 예술가가 나오면 그만큼 그 민족이 강해진다고 하지요. 전쟁이 아닌 다른 이유로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이 시대 허수아비와 허수어미, 허수 헤어진 한 가족의 만남을 통해 이산의 아픔이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 부모님 고향이 이북 평양이세요. 이중섭 선생님 고향도 평양이죠. 저는 서울 태생이지만, 아버지는 이제 이산가족이죠. 그래서 자연히 이산가족에 관심도 깊었고 이산가족이다 보니 제가 가장 애착이 가는 ‘북청에서 온 사자’라는 작품을 썼어요. 그게 MBC 창작동화대상 1회에서 제가 상을 받게 됐었죠. 처음에 애니메이션화 한다 해서 공모했었는데, 그게 지켜지지 않았죠. 우리가 지금 분단 상황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분들이 재혼하신 분들도 꽤 있더라고요. 북에서 내려와 남한에서 만난 한 마리 사자와 짝을 지어 사자놀이를 하는 내용인데, 그게 당선됐어요. 근데 그거는 사자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의 아픈 가족사 이야기죠. 전쟁을 통해 헤어진 가족들을 생각하며 쓴 작품이죠.

 

- 최근에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허수아비를 쓰셨는데, 쓰게 된 동기가 있다면.

▲ 제가 서울 태생이다 보니, 진짜 시골을 볼 기회가 없었어요. 어느 때인가 저의 아버님이 그 옛날 지리산 섬진강에 댐 공사 일을 맡아 하셨는데, 그때 시골에서 허수아비를 처음 봤는데,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그때 소, 닭도 처음 보았고 허수아비를 처음 만났었는데 어려서인지 너무 커다란 인형처럼 보여서 무서웠어요. 내게는 충격이었죠. 그때는 또 어릴 때 예배당에 많이 갔었거든요.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선물 주고 연극도 하니까 갔는데, 교회 십자가를 처음 봤을 때도 정말 충격이었거든요. 예수님이 매달려 있는 십자가, 어린 시절엔 다 충격이었어요. 근데 그 허수아비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 "허수아비는 그야말로 허수아비 식으로 시대를 살아왔죠. 눈사람도 언젠간 사라질 운명이지만, 허수아비와 같이 교류하면서 살아가죠. 허수아비는 ‘예스터데이’(Yesterday) 과거에서 온 사람이에요. 눈사람은 구름으로 떠돌다 내려와 눈사람이 된 미래(Future)에서 온 사람이다"고 밝히는 강원희 작가.  [국토교통뉴스=한창권 기자]  

 

- 무서운 허수아비였네요.

▲ 가엽고 무서웠어요. 그래서 허수아비에 대한 마음에 새겨진 게 많았었는데, 그때 시골에서 본 소를 보고서 제가 이제 동화작가이다 보니 순수했었는지 정말 소가 소고기가 된 줄은 몰랐어요. 지금도 소고기를 못 먹어요. 어린 시절에 소와 그런 약속을 했거든요. 닭도 먹지 않아요. 생명이 있는 생명체를 먹는다는 게 정말 충격이었죠. 

 

- 시골 허수아비가 인생을 바꿨다. 

▲ 시골에 간 게 내 인생을 바꾼 거죠. 제 작품 속 ‘허수아비’는 새들을 쫓기도 하고 또 바람 따라 춤을 추기도 하잖아요. 근데 또 뮤지컬로 올려지면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할 텐데요.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정말 요즘 K-팝 덕분이기도 하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거는 굉장히 잘해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화가나 의사나 어떤 캐릭터가 분명했는데, 요즘에 어린이들 꿈은 K-팝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더 많더라고요. 근데 허수아비가 바로 새들에서 노래를 배우고, 바람에서 춤을 배우고 하는 게 바로 요즘 어린이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 허수아비가 곧 아이라는 얘기인데.

▲ 허수아비가 바로 아이들 모습이다. 근데 그런 모습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서 아이들이 그런 허수아비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안 가르쳐줄 수도 없잖아요. 요즘은 또 AI 허수아비도 많이 하더라고요. 어쩌면 제가 쓴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허수아비’는 이 시대의 마지막 순수한 동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은 허수아비 보기가 힘들죠. 얼마 전 시골에 갔더니 허수아비 대회를 하더라고요. 허수아비에게 요즘 아이들 옷도 입히고, 배트맨 옷도 입히고 또 신랑 신부 패션의 허수아비를 만드는 등 다양했어요. 아이들도 무척 재밌어하고 함께 참여했지만, 그런 모습에서 진정한 ‘허수아비’를 느낀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 올 하반기에 연극과 뮤지컬로 탄생하는데 소감이 어떤가.

▲ 작품 속 ‘허수아비’는 책 속에 그냥 누워 있지만, 뮤지컬은 무대 위에 올려지기 때문에 허수아비가 살아서 움직이고 노래하고 춤추고 자기들 모습하고 똑같이 움직이니까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허수아비는 아이들을 의인화한 거죠. 아이들을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걸 읽는 거죠. 작품을 읽지 않으면 허수아비를 일으켜 세울 수가 없어요. 글은 책 속에 그냥 담겨 있으니까, 페이지를 열기 전에 열면 자기만의 상상 속 허수아비하고 있겠죠. 근데 무대에서 보여주면 자기 친구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 뮤지컬 작사도 쓰셨다는데. 

▲ 처음 해봤답니다. 왜냐면 뮤지컬을 처음 만나보기 때문이죠.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일을 통해서 노래에다 시를 써서 날개를 달아주는 거지요. 그래서 글은 읽어야 하지만, 다양한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게 되면 그럴 것 같아요. 평면의 글자가 무대에 올려지면 다시 살아나는 거지요. 노래도 그렇고 동화도 살아나는 거죠.

 

▲ 강원희 작가는 '"1973년 화가 이중섭의 그림을 처음 만났는데,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았다. 뭔가 알 수 없는 슬픔이랄까, 밀려오는 어떤 슬픔과 더불어 그분의 생애를 보니 그림과 너무 일치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아기가 자다가 깨면 알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리잖아요. 그랬던 느낌, 막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어린이에게 관심이 깊어졌다"고 말한다. [국토교통뉴스=한창권 기자]

 

- ‘어린 허수아비’와 ‘어른 허수아비’가 곧 뮤지컬로 부활하는데, 소감이 어떤지.

▲ 어른들도 한때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뮤지컬을 통해 어린이로 돌아갈 수도 있고, 그러면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막 끌려 나올 것 같아요. 제가 어린이를 위해서 쓴 동화를 본 어린이가 커서, 어른이 된 다음에 ‘아, 옛날에 그런 동화가 있었지’ 그러면서 동화를 다시 찾아보는. 그러니까 두 번 읽을 수 있는 그런 동화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도 오래 쓰다 보니 제 동화를 읽었던 친구들이 모두 어른이 됐어요. 그런데 그게 꿈이 됐어요. 왜냐면 어린 시절에 읽던 동화책을 다시 찾아 읽지 못해서죠. 지금은 ‘종이 세상’이 끝나가고 책이 사라지고 있어서요. 근데 이 뮤지컬 배우 허수아비를 통해서는 이 두 가지를 다 이룰 것 같았어요. 왜냐면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손잡고 와서 볼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이죠.  

 

- 점점 아동문학이 좀 약간 좀 빛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상황인데 이때 어떻게 평가를 하나요.

▲ 요즘 아이들 출산율도 낮지만, 아이들이 점점 보기 힘든 시대임을 느껴요. 1990년대만 해도 전쟁 이후 그런대로 사회가 안정돼 한때 베이비붐 시절이 있었고 아기들이 많았던 때였죠.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서 한 권의 책이라도 정성껏 사주던 때여서 동화도 전성기를 맞았었는데, 지금은 젊은이들 인구도 감소하고 아기도 잘 낳지 않아 학교가 점점 사라지고 있잖아요. 점점 동화 세상이 없어지고 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도 이제 보기 어려워요. 옛날에 아이들이 옛날얘기를 얼마나 좋아했어요. 

 

- 세계적인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어릴 때 엄마로부터 옛날 동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유아 시절에 들었던 꿈과 환상 이야기가 나중에 영화제작에 있어서 큰 밑거름이 됐다고 들었다. 요즘은 그런 모습이 거의 사라진 시대다. 어떻게 보시는지.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어머니는 유태인인데, 어릴 때부터 아이를 품에 안고 동화 얘기를 많이 해줬대요. 그걸 들으면서 꿈과 환상이 커진 거죠. 그 동화가 영화로 이어지면서 마치 동화적이고 동심의 세계를 보는 듯한 영화가 탄생한 거죠. 그래서 동화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 어떤 작품이 떠오르는지.

▲ 영화 ‘캡틴 쿡’에서 선장을 보면, 그 상상력으로 막 날아다니는 ‘피터 팬’을 소재로 한 얘기인데, 결국은 그 피터 팬이 자기였잖아요. 그리고 영화 ‘ET’에 외계인하고 자전거 타며 밤하늘 달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전 세계 아이들이 어떤 환상을 가졌을까 생각해봐요. 그래서 스필버그는 ‘보통 꿈에 젖었던 사람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상력으로 영화 만들어가는 솜씨가 아주 대단해요. 성장환경도 너무 중요하죠. 그냥 영화학교 나왔다고 감독이 되는 게 아니구나. 엄마의 동화 이야기가 명감독을 만든 거다. 어머니가 정말 중요해요. 모든 교육은 엄마예요. 언어도 엄마를 통해 배우잖아요. 엄마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도 제2의 창조라 봐요. 1949년생인 그분도 이제 연세가 높아 어린이들에 대한 작품을 만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 동심이 사라진 시대다.

▲ 지금은 아이들의 동심 공간이 없어요. 놀이터에도 공원에도 태권도장에 가도 없어요. 어린 시절에 아기를 품에 안고 책을 읽어주던 친구들은 정말 성장 과정부터가 틀리더라고요. 아쉽게도 저는 제 아이를 품에 안고 책을 읽어준 기억이 없어요. 왜냐면 제가 동화를 쓴다면서 안팎으로 방송 일도 하고 이랬거든요. 아이에게 따뜻하게 해줬던 기억이 저에게 없었어요. 미국 생활이 바쁘다 보니 제 딸 아이도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동화를 쓴다고 하면서 내 아이를 두고 무엇을 위해 일했나. 요즘은 그런 생각이 부쩍 많이 들어요. 그것을 내 딸 아이들을 위해 빚 갚는 심정으로 키워주게 됐던 거죠. 미국에서는 아이들 키우는 게 정말 쉽지가 않아요. 부모들이 다들 바쁘니까요. 한국도 그렇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을 품에 안아서 키우던 문화가 이제는 사라진 데다 그런 아이들이 커서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또 무슨 꿈을 꿔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시대가 안타까워요.

 

- 작품 속 ‘눈사람’은 무엇을 뜻하는지.

▲ ‘기후 변화’다. 눈사람은 녹아버리잖아요. 지금 북극곰들도 얼음이 녹기 때문에 갈 곳을 잃은 것처럼 어쩌면 눈사람은 기후에 대한 어떤 예감으로 쓴 걸지도 모르겠어요. 눈사람은 녹으면 금방 사라져요. 요즘 기후 변화가 그렇죠. 결국은 우리가 사는 이 땅도 순수한 아이들의 것을 빌려 쓰는 건데, 그걸 우리가 너무 잘 못 가꾸고 있는 거죠.

 

▲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허수아비’ 표지 [동화작가 강원희]     

 

- 참새들은 뭘 상징하나요.

▲ 참새들은 글쎄요. 어린이들이죠. 흙 묻은 발을 허수아비 옷에다 닦는 개구쟁이들, 철모르는 어린이들, 그런 순수함이랄까. 그래서 자기 목소리로 노래도 하고 이러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새들이 많아요. 허수아비하고 눈사람은 대비가 되는데, 허수아비는 서 있는 물체고 눈사람은 언젠가 녹아버리죠. 한계가 있어요. 사람은 사람인데 하나는 허수아비고 하나는 눈사람으로 녹아서 날아가 없어지는 거죠.

 

- 허수아비는 무엇을 뜻하는지.

▲ 허수아비는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며 춤추고 노래하고 풍각쟁이한테 춤을 배우고 또 소리쟁이 새들에게 노래를 배우고 그러는 요즘 아이들의 그런 특징을 지니고 있고요. 눈사람은 정말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구름에서 왔다가 또 얼었다가 녹았다가 떨어져서 하는 게 작품 속 대화 중에도 ‘단 하루라도 좋으니까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보통은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죠. 아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눈사람에게 쥐 눈이 콩에다 돼지감자 코를 만들죠. 근데 이 눈사람 입에다 빈 병을 꽂아놨어요. 그러면 바람에 의해 병에서 휘파람이 불잖아요. 휘파람 부는 눈사람이 이제 허수아비랑 대화를 나누게 되죠.

 

- 녹아서 사라지는 ‘눈사람’은 우리의 인생 이야기 같다.

▲ 봄에 피는 매화나무에 기댄 눈사람 몸에서 꽃향기가 되게 나잖아요. 그러면 허수아비가 꽃가지를 꺾어서 눈사람 병에다 꽂아주면 휘파람이 불 때, 꽃향기가 진동하네 하고 말하죠. 이들은 또 하늘의 별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러면서 ‘너에게 깨끗한 별을 줄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바라봐서 별 들이 때가 묻지 않았을까’ 이런 대화를 하면서 별 두 개를 그리죠. 별 두 개는 이별이죠. 네 개면 사별이고요. 허수아비는 주인어른하고 사별했어요. 자기를 만들어준 주인어른이 땅도 물려준다고 했지만, 주인 아들이 몽땅 빼앗는 그런 내용이 있어요. 그 허수아비는 그야말로 허수아비 식으로 시대를 살아왔죠. 눈사람도 언젠간 사라질 운명이지만, 허수아비와 같이 교류하면서 살아가죠. 허수아비는 ‘예스터데이’(Yesterday) 과거에서 온 사람이에요. 눈사람은 구름으로 떠돌다 내려와 눈사람이 된 미래(Future)에서 온, 기후와도 관계되는 눈사람이죠. 

 

- 마지막으로 동심을 잃어버린 세대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 어찌 보면 요즘 아이들에게 어떤 지향점을 줘야 하지 않을까. 별을 봐야 별을 딸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하늘조차 얼마 없는 거죠. 또 한쪽 발은 땅에 있는 꽃을 짓밟고 있어서 주변을 배려하지 못할 때가 많은 시대다. ‘하늘의 별과 땅의 꽃’을 잃은 아이들에게 이번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허수아비’ 공연을 통해서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되찾게 될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현대미술 전공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

‘꿈을 긷는 두레박’으로 아동문학평론 신인상

詩 ‘별자리를 따라간 이중섭’으로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북청에서 온 사자’로 MBC 장편 창작 동화 대상

‘잿빛 느티나무’로 세종아동 문학상

‘바람이 찍은 발자국’으로 한정동 문학상

‘흑인병사의 눈물’로 미주중앙일보 단편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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